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의 4차 핵실험 (문단 편집) == 영향 == 북한의 4차 핵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국제정치학적으로는 '''[[박근혜 정부]]의 외교정책을 파탄낸 사건'''이었다. 원래 [[박근혜 정부]]는 [[이명박 정부]]와 달리 친미 외교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친선을 도모해 미국과 중국 관계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여 미국, 중국 모두에게 중요한 동맹국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. 이러한 외교 정책은 한국의 경제력, [[한류]]로 대표되는 문화적 역량이 뒷받침되었기에 실현될 가능성이 있었다. 나아가 북한의 잇다른 미사일 발사 실험, 핵실험으로 북한의 대외 이미지가 급속도로 나빠진 것도 이런 박근혜 정부의 외교 정책을 펼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. 박근혜 정부의 친중 외교로 [[시진핑]]은 이례적으로 북한이 아닌 남한을 최초로 방문하고 [[전승절]] 행사 때에 박근혜를 푸틴과 동등한 자리에 앉힐 정도로 형식상으로는 박근혜를 미국, 러시아 등 주요 대국과 동등하게 대접했다. 그러나 반대로 이런 박근혜의 행보로 한미관계는 상당히 나빠진 상태였다.[* 오바마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'Poor President' 발언이 냉각된 [[한미관계]]를 대표한다.]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에서 보여준 중국의 태도로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보복으로써 사드 설치를 강행하였다. 이로 인해 [[한중관계]]가 극도로 악화되었고 박근혜 정부는 부랴부랴 미국과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였으나 [[오바마]] 정부와 [[박근혜]] 정부 사이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. 결국 '''박근혜는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버림받게 되었으며''' [[북중관계]]는 급속도로 회복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. 이후 [[한국]]은 [[20대 총선]]으로 박근혜 정부가 정책추진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논란과 뒤이은 [[탄핵]], [[19대 대선|대선]]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게 되었다. 미국 또한 대선시기에 들어가고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. 이 기간 동안 두 나라는 정치적 급변, 혼란을 겪게 되었다. 그래서 북한은 급속도로 비대칭 전력을 증가할 수 있게 되었다.[* [[태영호]] 공사의 말에 따르면 [[김정은]]은 박근혜 정부가 임기를 다 채울 것이라 생각했으나 친북 정부가 생각보다 빨리 집권하게 되어 핵, 미사일 실험을 서두르게 되었다고 한다.] 결국 [[북한의 6차 핵실험|6차 핵실험]]이 성공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북한은 외교에서의 협상력을 높이게 되어 그동안 시진핑 정부의 친한 행보로 인해 지체되었던 [[북중관계]], [[트럼프]] 정부와의 [[북미관계]]를 개선하는 데에 노력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